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밀리안 콜베 (문단 편집) == 그 외 == 10대 초반의 어린 시절 꿈 속에서 [[성모 마리아]]를 만나는 체험을 했다고 전해진다. 당시 성모 마리아는 어린 콜베에게 흰색, 빨간색의 왕관을 들고서 "어느 것을 원하느냐?"라고 물었는데, [[https://m.catholictimes.org/mobile/article_view.php?aid=174925|콜베는 "둘 다요"라고 대답했다.]] 이에 성모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고 한다. 여기서 흰색과 빨간색의 왕관은 각각 [[수도자]]로서의 순결함, 그리고 [[순교]]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.[* 우연이겠지만 이들 두 색상은 콜베의 모국인 [[폴란드]]의 국기에 쓰인 것이기도 하다.] 말하자면 본인의 미래를 암시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저없이 받아들였음을 뜻한다.[* 생전에 콜베는 성모 마리아로부터 경험한 계시를 자신의 어머니에게만 털어놓았을 뿐,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. 때문에 그가 순교한 후 [[http://militia-immaculatae.asia/korean/info15.php|어머니를 통해 비로소 알려졌다.]]] 1930년 [[일본]]으로 가기 전 [[부산광역시|부산]]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동생에게 편지를 남겼다. ||(전략) [[대한민국|한국]]은 내가 전혀 모르는 나라였다. 그 경치를 구경하고 또 구경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였다. [[부산광역시|부산]]은 한국의 마지막 기착지였다. 여기서 놀라운 일을 알게 됐다. 기차를 내려 배에 오르기 전에 4시간이나 자유로운 시간이 있어서 [[미사]]를 드리고 싶었으나, [[성당]]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. 어떤 순경이 [[한국]]에 성당은 3개밖에 없고[* 이는 사실과 다르다. 당시 [[부산]]에는 이미 범일동에 성당(부산진 본당-오늘날의 범일성당)이 존재했다. ([[신부(성직자)|신부]]가 상주하지 않는) [[공소(가톨릭)|공소]]도 상당했다. 다만 [[명동성당]] 같은 규모의 알려진 성당이 많지 않다는 의미였거나, 부산진 본당이 관리하는 지역 내에서 본당이 [[거제시]] [[옥포]], [[밀양시]] [[삼랑진]] 셋 뿐이라는 것이 잘못 전해졌을 수는 있다. ([[울산광역시]]의 언양(현 [[울주군]]) 본당은 별개 분리.) 여하간 범일성당이 [[부산역]]에서 걸어서 최소한 45분 거리(3km 내외)로 떨어진 만큼, 주어진 시간 동안 콜베 신부 일행이 [[미사]]를 드리기는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. [[성공회]] 성당인 대청동 성당이 [[부산역]]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(용두산)에서 키 큰 '관광명소' 역할을 하고 있었던 점도 [[가톨릭]] 성당의 존재감을 낮추었을 수 있다.] [[부산]] 시내에는 [[프로테스탄트]] 교회가 6개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. [[성모무염시태|원죄 없으신 성모님]]께서는 그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, 거룩한 [[예수|당신 아들]]의 나라를 세우실 것인가! 1930년 8월 3일,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|| 이원복의 만화 [[사랑의 학교(만화)]]의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다. 다만 오류가 많으므로 [[사랑의 학교/에피소드#s-1.19|해당 항목]]을 참조할 것. 콜베 성인을 직접 만나서 가르침을 받은 한국인 사제도 있었다. 주인공은 오기순(1910년생) 신부라는 인물인데,[* 그의 형 오기선(1907년생. 세례명 요셉)도 사제로 활동했으며, 두 사람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최초의 형제 사제라는 기록을 세웠다. 이들 가운데 대외 활동, 인지도 측면에서는 형 오기선이 동생보다 앞선 편인데, 교회사학자이자 다수의 문화 및 구호 활동을 펼쳐 1960년대에 문화훈장을 받았을 정도. 다만 일제 말기에 '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'이라는 천주교계 친일 단체의 간부였다는 오점이 있다.] 일제 치하에서 신학생으로 일본 유학 생활을 하던 1930년대 초 나가사키에서 활동 중인 콜베 신부로부터 철학 교육을 받은 것이다. 오 신부는 1941년 일본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, 광복 후에는 서울대신학교(현재의 가톨릭대 성신교정)에서 철학 교수로 활동하였다. 만년에는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사목 활동을 수행하고서 은퇴, 1993년 타계했다. 가톨릭 계열의 만화잡지 [[내친구들]]에서 손옥희(스토리담당) 맹상수(그림) 부부가 '''성모의 기사 콜베'''라는 제목으로 콜베 신부의 일대기를 만화로 연재했다. 참고로 이들 부부는 몰로카이 섬의 다미안 신부, [[요한 마리아 비안네|아르스의 비안네 신부]]와 같은 다른 성인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들을 <내친구들>에서 연재했다. [youtube(lbVULfwqepw)] 2017년,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 드라마 형식의 영화가 모국 폴란드에서 제작되었다. 제목은 <2개의 왕관>(Two Crowns>이며, 위에 소개된 어린 시절 성모 마리아와의 일화에서 유래한 제목이다. [[가톨릭평화방송]]에서도 [[https://m.cpbc.co.kr/paper/view.php?referer=L3BhcGVyL2xpc3QucGhwP2ZpZD0xNDUz&cid=817786&path=202201|특선영화로 방영했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